sub_left
search

 

 

ȭ
ȭ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

정부, 해외유출 문화재 환수에 적극 나서야

국회의원 주호영 | 한나라당, 대구 수성을  / 2009-05-04 15:10:01

2009년 1월 현재 해외에 흩어진 우리 문화재는 7만 6000여 점에 이른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민간 소유 문화재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불구, 해외 유출 문화재 환수 문제에 대해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환수 당위성을 내세울 역사적 근거를 수집해 소장국에 제시하고 외교 교섭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평소 문화재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주호영 한나라당 의원은 본지의 기고를 통해 “정부가 해외유출 문화재 환수에 적극 나서야 하며, 문화재 관련 인재 육성에도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편집자 주

해외 유출 문화재, 7만 6000여 점
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을 빌미로 프랑스함대가 강화도를 침범,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하던 외규장각을 습격하여 일부 서적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불태워버린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이 병인양요이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고문서의 반환에 합의했으나, ‘휘경원원소도감의궤’ 한 권만이 환수되었을 뿐, 프랑스 정부는 외규장각 고문서들을 약탈물로 인정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나서 자국의 재산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의 자료에 의하면, 2009년 1월 현재 해외에 있는 우리의 문화재는 총 7만 6000여 점으로 일본에만 3만 4000여 점이 있다고 한다. 숱한 침략의 역사를 통해서 해외에 약탈된 문화재뿐만 아니라, 해외 유명 경매기관을 통해서 넘어간 문화재와 민간단체나 개인이 해외에 기증한 문화재도 상당수다.
정부 대응 미흡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미비하다. 1955년부터 해외에서 돌려받은 문화재는 약 8000여 점으로, 개인의 기증에 의한 환수가 전체의 3분의 2에 달한다. 1958년 한·일회담과 1966년 한·일문화재협력협정 때 받은 문화재를 제외하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돌려받은 문화재는 거의 전무하다.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의병에 대해 기록한 북관대첩비를 비롯, 임진왜란 때 일본이 약탈해갔던 조선왕조실록 등의 반환은 민간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조선왕조실록의 경우,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조선왕조실록 환수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리고 2년간 조선왕조실록이 약탈 문화재임을 입증하는 자료를 취합하여 그 당시 실록을 소장하고 있던 도쿄대학을 상대로 민사소송까지 준비한 끝에 실록은 다시 조선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러한 숱한 민간의 노력이 수천 점의 문화재 환수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부는 외교 분쟁의 우려 때문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쟁이나 침략 등으로 유출된 유물과 합법적인 매매나 기부 등으로 유출된 유물간의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정부의 미온적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민간단체의 환수 노력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문화재 관련 인재 육성 절실
해외 소재 우리 문화재에서 국내에 있는 문화재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참담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현재 파악하고 있는 박물관 소장품은 약 14만 6000여 점으로 등록이 된 문화재를 뜻한다. 그러면 등록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문화재의 양은 얼마정도 될까?
1970년대 중반 경주의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최근에서야 등록이 마무리 되었다고 한다. 30년의 긴 세월 끝에 우리에게 그 존재가 알려진 것이다.
문화재 등록의 절차를 보면, 발굴작업이 끝난 후에 측량과 사진촬영 및 발굴 위치와 날짜 등을 기록하면 된다. 물론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유물은 약 8만여 점으로서 발굴작업에 소요되는 시간과 인력은 가히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문화재 등록작업의 소요시간에는 다수의 변수가 있지만, 우리의 경우 부족한 문화재 관련 인력이 제일 큰 변수임에는 틀림없다.
토지 개발사업이 증가함에 따라 발굴되는 유물의 양도 증가하고 있다. 문화재 등록인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늘어나는 발굴 유물을 소화할 수 없게 되는 악순환도 수십 년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등록절차를 기다리고 있는 유물들은 훼손의 위험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모자라는 인력은 결국 정부의 지원이 적다는 것 아닌가? 문화재 관련 학과는 비인기학과로 외면당한지 오래이다.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해답은 아닐 것이다.
문화재청 산하 교육기관들은 전임교원 부족, 연구진 부족 등으로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문화재 관련 인재들의 교육과 일자리 제공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문화재 보존 노력도
끝으로 무형문화재의 경우를 보더라도 정부의 주도적인 활동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아리랑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국가기관은 전무하다. 민간단체의 주도하에 잊혀져가는 아리랑의 명맥을 잇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작년부터 아리랑세계화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나, 아리랑을 문화재로서가 아닌 문화콘텐츠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문화콘텐츠 발굴과 문화강국을 향한 현 정부의 정책에서 문화재 보존의 노력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리랑이 우리 일상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전국에 흩어져 있는 아리랑을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분류하여 우리의 영구적인 문화유산으로 만드는데 정부가 앞장서야한다.
문화재는 한번 훼손되면 영원히 재생 불가능한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이다. 침략의 역사 속에서 잃어버린 문화재와 박물관 창고에서 문화재등록 절차를 기다리는 수많은 유물들은 모두 우리의 찬란했던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데 우리 모두의 적극적인 관심을 바란다.

주호영 의원은
대구고등법원 판사
17,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