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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똥파리’의 감독 양익준, 히로인 김꽃비

“똥파리는 나를 위한 영화다”

배문희 기자  / 2009-05-04 14:33:28

내일 없는 청춘 끝내고 충무로 블루칩으로 떠오른 양익준
영화 ‘똥파리’의 상훈은 내일 없는 청춘이다. 용역 깡패로 일하며 불쌍한 사람을 두들겨 패서 번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위아래도 없고 무서운 것도 없다. 입만 열면 욕이고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

허구헌날 아비를 두들겨 패는 ‘막장’에 아무 이유 없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주먹질을 하는 ‘지랄 맞은 놈’이다. 하지만 그를 미워할 수가 없다. 오히려 우리를 울리는 이 남자. 그래서 그의 폭력은 잔인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의 욕설은 차라리 시적으로 느껴진다.

신촌의 한 술집에서 만난 그의 모습은 영화 속 상훈과는 딴판이었다. 상처받은 짐승처럼 세상을 향해 눈을 부릅뜨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순수하고 수줍은 미소가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청년이 그곳에 있었다.

요즘 충무로의 블루칩으로 떠오른 이름, 양. 익. 준. 그가 감독과 각본, 주연을 도맡은 영화 ‘똥파리’는 각종 국제영화제의 상을 휩쓸며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독립영화 사상 최초로 상영관을 50개 이상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혜성같이 나타난 독립영화계의 스타, 독립영화계의 브래드피트, 충무로의 슈퍼 루키. 그를 지칭하는 수식들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촬영기간은 4개월 남짓이었지만 영화가 만들어지기까지 걸린 기간은 무려 35년이다.

지긋지긋하게 가난했다. 서울 중림동의 달동네에서 태어나 서울의 변두리를 전전하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담배와 술을 배우고 나이트에서 시간을 탕진하며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어린이용 완구를 파는 영업사원, 용산 전자상가와 아현동 가구점의 배달사원 등을 전전했다.

“가족끼리 오순도순 모여 앉아 과일을 깎아 먹는 풍경은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일인 줄로만 알았다”는 고백에서 짐작할 수 있듯 가족관계도 순탄치 않았다.
내일 없는 청춘이었지만 그에겐 학창시절부터 품어온 꿈이 있었다. ‘배우가 되자!’ 그 꿈을 위해 뒤늦게 공주영상대 연예연기과를 졸업하고 연기학교 ‘엑터스21’에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배웠다. 30여 편의 단편과 장편에 출연했지만 이름을 알리진 못했다. 그는 그 시절에 대해 “연봉이 300만 원이던 시절”이라고 표현했다.

연봉 300만 원의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영화는 포기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았다. 난곡동 지하 전세방을 빼서 만든 ‘똥파리’는 그의 35년 인생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작품이다.
그는 “똥파리는 나를 위한 영화”라고 말한다. 그만큼 내면의 절망과 독기를 절절하게 풀어낸 영화라는 뜻일 게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에서 그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보인다. 아니, 그는 아예 연기를 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에 사람들은 웃고 울었다. 해외 관객들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의 진정성과 슬픔에 찬 외침이 사람들의 영혼을 울린 까닭이다.
영화 속 상훈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초반의 살기어린 눈빛과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점차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 누나를 찾아가 소주도 한 잔 건네고 핸드폰도 개통한다.

양익준도 이 영화를 통해 가슴 속의 상처를 훌훌 털고 세상을 향해 화해의 손을 내밀게 된 것은 아닐까. 이를테면 ‘한풀이’ 같은 것 말이다. 대답은 그의 다음 말 속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영화 속에는 똥파리 같은 인생들, 숨 쉬기조차 어렵도록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아픔과 절망스런 삶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순수한 미소로 영혼을 울리는 충무로의 보헤미안. 그를 만난 한 줄 소감이다.

충무로에 아름다운 ‘꽃비’가 내리다
라스팔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한 배우 김꽃비
영화 똥파리의 밑그림은 배우 김꽃비를 만나 비로소 색이 입혀졌다. 참을 수 없이 끔찍한 일상과 가족 안에서의 상처에도 주눅 드는 법 없이 거침없이 욕하고 침을 뱉는 소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순수함을 잃지 않고, 따뜻한 연민으로 되려 세상을 감싸 안는 소녀 ‘한연희’. 김꽃비는 슬픔 속에서도 순수함과 쾌활함을 잃지 않는 한연희 역을 훌륭하게 해냈다.

김꽃비를 만난 날은 그녀의 이름처럼 벚꽃잎이 ‘꽃비’처럼 내리는 날이었다. 김꽃비는 극중 한연희처럼 인터뷰 내내 씩씩하고 활달했다. 하지만 창밖을 내다볼 때나 곰곰이 생각할 때는 어딘지 쓸쓸한 표정이 감돌았다. ‘꽃’의 해맑고 해사한 이미지와 ‘비’의 우울하고 슬픈 이미지를 고루 갖추었달까. 묘한 배우라는 느낌이 들었다.

김꽃비는 요즘 정신없이 바쁘다. 영화 ‘똥파리’가 해외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을 하면서 연일 매스컴의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라스팔마스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유명세에 기분이 한껏 들떠있을 법도 하지만 무심한 반응이다.

“전요, 오히려 유명해지고가 싶지 않아요. 너도 나도 다 아는 스타가 되기보다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실력을 인정받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무튼 안 유명해졌으면 좋겠고 앞으로도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연기를 소신껏 하고 싶어요”

85년생. 한창 꿈 많은 나이의 여배우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 예상 밖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필모그라피를 훑어보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녀는 애초 상업성 짙은 영화에서 스타가 되겠다는 야심이 없는 배우다. 배우가 꿈이었던 초등학교 시절, 연극무대로 데뷔했고 고등학교 때는 연극부와 극단을 오가며 기본기를 탄탄히 다졌다.

영화 ‘똥파리’에서 그녀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차림의 소녀로 등장한다. 때문에 “실물이 훨씬 예쁘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단다. “여자로서는 당연히 예쁘고 싶죠.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실제로 우리 주위에 예쁜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그저 배우로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싶어요.”

그녀는 “똥파리라는 영화는 제게 배우로서 큰 전환점이 된 영화예요. 앞으로 더 잘하고 싶고 제 자신의 벽을 넘고 싶어요. 벌써부터 좋은 작품 만나고 싶어 근질거려요”라며 들꽃 같은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비주류 성향’이라고 말한다. “유행을 별로 안 좋아해요. 남들이 다 하는 것은 시시하거든요.” 그래서일까. 그녀는 유독 실험성 짙은 신인 감독과 인연이 깊다. 전계수 감독의 저예산 영화 ‘삼거리 극장’에서 주인공 ‘소단’역을 맡았고, 양익준 감독과 ‘똥파리’를 함께 했다. 작품성 짙은 두 작품에서 그녀는 신인감독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았다. 앞으로 그녀의 이름 앞에 어떤 필모그라피가 추가될지 기대가 모아지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