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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온 가족 함께 백제의 역사 속으로~’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감성 여행

이갑용, 배문희 기자  / 2009-05-04 13:39:46

가정의 달, 5월이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겨우내 비쩍 말랐던 산이 푹푹 살이 찌고 나무마다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며 바람이 불면 꽃잎이 아름답게 흩날린다.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떠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계절이다.

이렇게 눈부신 봄날, 1400년 전 백제의 얼이 깃든 익산시로 온 가족이 함께 봄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기면서 우리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뜻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섬세하고 우아한 예술미가 녹아 있는 미륵사지 석탑
백제의 고도 익산시에는 1400년 전 옛 왕조의 숨결이 곳곳에 살아있다. 그 중 미륵사지는 동양 최대의 사찰지이며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한 곳이다. 지금은 옛 영화는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지만, 마음의 눈을 열면 너른 벌판 위로 미륵사의 웅장한 자태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미륵사지에는 우리나라 최대의 석탑이라는 미륵사지 석탑이 백제의 역사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지금은 아쉽게도 무너진 뒤쪽을 시멘트로 보강해서 반쪽 탑의 형태만 남아 있지만, 옛날 백제 석공이 만들었던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해 복원 중이다.

미륵사지 석탑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이유 중 하나는 탑의 재료가 나무에서 돌로 바뀌는 첫 과정을 보a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돌로 만들었지만 목조건물의 정교하고 가벼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의 형식을 돌로 구현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배흘림 기법이 녹아있는 기둥돌과 하늘로 날아갈 듯 가벼운 지붕의 형태를 살펴보면 목조 건축물의 세심한 특징을 돌로 정교하게 깎아 만들어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백제 명인들의 섬세하고 우아한 예술미는 돌 조각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살아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올해 초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돼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들과 학자들은 예상치 못한 유물의 발견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곧 바로 해체조사를 중지하고 사리장엄구의 수습에 들어간 결과 사리공(舍利孔) 안에서 백제 무왕의 혼이 담긴 금제 사리호와 사리, 구슬 등 500여점의 국보급 유물이 발견됐다.

사리장엄구의 발견으로 인해 미륵사지 석탑과 백제의 역사가 재조명되면서 익산 관광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백제의 비밀 간직한 왕궁리 오층 석탑
미륵사지에서 6Km 떨어진 곳, 왕궁리에는 거대한 규모의 백제 유적지가 있다. 과거엔 쓸쓸하게 터만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발굴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발굴 작업이 완료되고 나면 베일 속에 감춰진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왕궁리 오층 석탑은 여러 절과 궁성이 모두 사라진 왕궁 자리에 유일하게 남아서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석탑이다. 이 석탑은 나이조차 선명하게 밝혀지지 않았던 ‘비밀의 탑’이다. 게다가 탑의 가치를 미처 알지 못해 보물 44호로 지정됐다가 1997년에 국보 289호로 다시 지정된 사연도 가지고 있다.

높이 8.5m의 석탑은 화려하다기보다는 단아하고 고상하다. 하나의 기단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햇살의 강도와 방향에 따라 색다른 분위기를 풍겨 보면 볼수록 신비로운 탑이다.

왕궁리 오층 석탑은 확실히 어느 시대의 탑이라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탑이다. 하지만 미술사학자인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왕궁리 오층석탑은 백제의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 탑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란다. 그가 미술사학과 학생들을 이끌고 백제 지역을 답사하던 중 왕궁리 유적을 둘러보고 나오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박수가 터졌다고 한다. 그 박수소리는 미학적 감동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백제의 탑이라는 가장 강력한 증거라는 것이다.

왕궁리 오층 석탑이 어느 나라의 것이건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를 감동시킬 만큼 아름다운 석탑이 남아 있다는 것이 그저 다행스러울 뿐이다.


그리움을 부르는 강, 웅포 곰개나루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넓은 강물, 이곳은 바로 금강의 넓은 품을 느낄 수 있는 웅포 곰개나루다. 육지를 힘차게 돌고 돌아온 금강은 곰개나루에 닿아 숨을 돌린다. 이곳에서 복잡하고 바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마음의 안정과 평온을 되찾는 것이 어떨까.

금강의 넓은 품에 안기고 싶으면 덕양정에 오르는 것이 좋다. 덕양정에서 바라본 금강은 조용하지만 웅장한 기세를 드러내며 서해를 향해 흐르고 있다. 조금 더 다리품을 팔아서 관망대까지 올라가면 멀리 웅포대교가 보이고 끝없이 흐르는 강물이 한눈에 다가온다.

강이 가지고 있는 매력 중 하나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물은 목적지인 바다에 다다르면 더 이상 나아가야할 지향점을 잃어버린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한한 반복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강물은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흐른다. 그 방향성과 목적성이 우리에게 용기와 의지를 심어준다. 웅포 곰개나루에서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꿈의 방향에 대해 사색해보는 것은 어떨까.

'사리장엄구 발굴 ‘백제古都로 부각’  
미륵사지 유물전시관 국립박물관 승격 추진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 사리봉안기는 익산이 백제 무왕의 천도지로서 경영됐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다.”(김삼룡 전 마한백제문화연구소장)
전북 익산시가 금마면 미륵사지(국보 11호) 석탑에서 국보급 유물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사리봉안장치)’가 발굴된 것을 계기로 백제문화권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잇따른 국보급 유물 발굴로 익산지역이 옛 백제의 고도(古都)로 부각됨에 따라 체계적인 보존과 홍보 등을 통해 백제문화의 중심지로 우뚝 선 익산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의지다.
시(市)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굴된 사리장엄구의 보존처리 작업이 완료 되는대로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을 국립박물관으로 승격시켜, 미륵사지의 국보급 유물들을 전시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주와 부여, 공주, 익산 등 4대 고도 중에서 익산 한 곳만이 국립박물관을 가지고 있지 않은 만큼, 전북도에서 운영중인 미륵사지 유물전시관의 국립박물관 승격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시는 이와 함께 사리장엄구 등 국보급 유물이 대거 출토된 미륵사지(彌勒寺址) 석탑을 포함해 쌍릉(雙陵)과 왕궁리(王宮里) 등 마한·백제시대 유적 지구를 ‘익산역사유적지구’로 명명함은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과 함께 역사교과서 등재도 신속히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올 1월초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해체 현장에서는 뜻밖의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백제 무왕(639년) 당시 탑을 만들 때 창건내역을 밝힌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 백제 무왕의 혼이 담긴 금제 사리호와 사리, 머리장식용 액세서리, 장식용 칼과 유리구슬 등 505점의 유물들이 세상에 모습을 들어내 것이다.
사학계는 이들 유물에서 혹시 무왕의 익산 천도설을 입증할 기록이 나오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등 일부 기록에 무왕이 익산에 새로운 백제의 도읍을 건설했다는 내용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미륵사의 건립 배경을 백제의 익산 천도설과 연관짓는 학자들은 많다. 그리고 미륵사지 인근에 있는 왕궁리 유적은 익산 천도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지난 1989년 9월부터 유물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왕궁리 유적(백제 무왕 600~641년 대에 조성)에서는 익산지역이 백제 말기의 왕도(王都)였다는 사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속속 입증되고 있다.
지난 2006년에 왕궁정원의 중심시설이 확인된데 이어 작년에는 백제시대 궁성 정원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는 조경시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사학자들은 “왕궁리 정원은 자연스러운 지형을 그대로 살린 자연친화적 구성이 돋보인다”며 “이는 당시 궁궐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최근에는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사리호의 문양이 왕궁리 유적(사적 제 408호)의 5층 석탑 유물과 동일하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익산 천도설’에 다시금 세인들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에 따라 사학자들은 미륵사지 석탑에서 출토된 백제 무왕 당시의 사리장엄구가 그동안 베일에 싸여 있던 백제사의 비밀을 상당 부분 밝혀줄 것인지에 대해 기대감에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한편 시는 사리장엄구 등 국보급 유물 발굴의 중요성과 가치를 조명하기 위한 학술대회 및 세미나를 올해 7-8회 개최하고, 익산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되살린 문화관광자원의 개발 및 상품화를 통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를 꾀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