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당시 처음 땅을 밟은 나라는 영국이었다. 템스강이 내려다보이는, 황금빛 국회의사당의 고급스러우면서도 오밀조밀한 건축양식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맞은편에는 세계 역사를 이끈 몇몇 지도자들의 동상이 우뚝 서서 영국연방의 위엄을 자랑하고 있었다.
대영박물관에는 전 세계에서 가져온 전리품과 약탈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람세스 흉상, 미라 등의 고대 이집트 유물 곳곳에는 총탄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까지 잘라와 전시해놓은 방을 둘러볼 때는 ‘약탈자’와 ‘대영제국’이라는 단어가 동시에 떠올랐다.
이처럼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을 기억하며, 높은 물가만큼이나 오랜 시간 고고할 것 같던 영국이 최근 흔들리고 있다. 지난 6월 23일 실시한 유럽연합(이하 EU) 탈퇴를 묻는 국민투표 때문이다. 기존, EU 잔류파가 많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EU 탈퇴 52%, EU 잔류 48%의 결과로 결국 브렉시트(Brexit · 영국의 EU 탈퇴)가 확실시됐다.
EU 탈퇴라는 전무후무한 사태에 파운드화와 유로화는 곤두박질쳤고, 세계 증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금값이 치솟았고, 그동안의 양적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전자산인 달러화와 엔화의 가치는 계속 오르고 있다.
투표차가 크지 않은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 현재 영국은 잔류파와 탈퇴파로 나뉘어 국민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잔류파 쪽에서는 재투표를 주장하고 있고, 잔류를 호소했던 캐머런 총리가 사퇴 의사를 보이면서 후임 총리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현재 영국은 브렉시트 결정을 후회하는 ‘리그렉시트(Regrexit)’ 움직임도 일면서 혼돈 상태에 놓인 듯하다.
그러나 EU 잔류 주장에도, EU 탈퇴 주장에도 이유는 있는 법.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했든 간에 영국은 이제 그 선택에 책임을 지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 할 차례이다. 이번 브렉시트가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독립이라는 자기 파괴적 에너지로 흐를지, 아니면 그렉시트(Grexit)’ 논란 때부터 불거진 EU 시스템, 나아가 규모경제를 뒤흔드는 역사적인 시발점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간에 지금 영국 국민들에게 필요한 건 성장통을 앓고 있는 영국을 지켜내기 위한 하나 된 마음가짐일 것이다.
문화관광저널 고경희 기자 ggh@news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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