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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동지역 교육여행 답사기③중국 화동지역의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교육현장을 가다

난징대학살 기념관ㆍ난징 진회하ㆍ졸정원 ㆍ우원ㆍ곤곡ㆍ소주중학 답사

글ㆍ사진 l 전병열 기자  / 2014-03-06 11:20:49


명효릉에서 버스편으로 우리 일행이 도착한 곳은 남경 사자로에 위치한 전통 대중음식점이다. 엄청나게 큰 식당은 테이블마다 손님으로 시끌벅적이다. 예약을 했겠지만 일반 손님들 틈새로 빈 테이블을 찾아 어깨를 부딪치며 식사를 했다. 회전 식탁에는 코스로 다양한 음식이 나왔다. 이곳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전통음식이라는데 중국요리 특유의 향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인가보다. 식사 후 이곳 전통 상가 보행로를 산책했다. 길가에는 다양한 모습의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으며 시민들은 여유로운 모습이다. 




다음에 이동한 장소는 난징대학살의 참담한 모습을 재현한 비극의 현장이다. 이곳 난징대학살 기념관(南京大屠??念?)은 독일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능가하는 비극의 역사, 난징대학살을 고발하는 기념관이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12월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전쟁 범죄로, 731부대의 생체실험과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이 벌인 가장 끔찍한 만행으로 꼽힌다. 중국 측 통계에 따르면 40일 사이에 30만 명의 중국인이 살해됐다. 학살된 주민의 유골이 발견된 ‘만인갱’에 기념관을 건립했기 때문에 전시관이 움푹 파여 있다. 기념관에는 3,500여 점의 사진과 3,300여 점의 현장 복원 모형도, 희생자 명단, 유골 등이 전시돼 있었다. 이 기념관은 2007년 12월 13일 난징대학살 70주년에 맞춰 18개월간의 보수와 정비 작업을 마치고 기념관을 확장 개관했다.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서 비분강개

기념관 입구에는 방문객들이 길게 늘어선 가운데 참혹한 모형의 조각상들이 당시의 참상을 재현하고 있었다. 조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잔인함에 몸서리를 치게 한다.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기념관 앞을 지키고 있는 비석에는 300,000이라는 숫자가 실감나게 조각돼 있다. 박물관 안으로 들어서자 참담한 상황들을 재현한 모형과 유골 발굴 현장의 사진 등이 생생하게 그날을 상상하게 한다. 관광객들의 비분강개한 신음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일본인 관광객을 태운 중국인 택시 기사가 ‘일본인은 여길 봐야 한다’며 행선지를 무시하고 택시비도 받지 않은 채 이 기념관으로 데리고 왔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중국인들의 한이 깊게 묻힌 곳이다. 유골 발굴 현장에 그대로 세운 까닭에 어두컴컴한 땅속이라는 느낌을 들게 하는 가운데 박물관 천정에도 희생자 300,000이라는 형광 글자가 선명하게 표시되고 있다. 일본인들이 학살 당시 사용한 무기들도 진열돼 있고 영상 다큐멘터리도 방영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다. 한쪽 벽면에 새겨진 희생자 이름과 확인된 사진들이 사실임을 나타내고 있다. 희생자 유골들이 뒤엉켜 있는 현장을 그대로 노출시켜 방문객들이 울분을 삼키기도 했다. 이 기념관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일본인의 만행에 치를 떨도록 구성됐다. 한국인 관광객이 유독 눈에 띄는 건 동병상련인가 보다. 이 기념관을 방문해 본 중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중국인 방문객들이 연일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기념관을 나서자 운금박물관이 나타났다. 중국에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비단 4가지를 꼽아 사대명금(四大名錦)이라고 한다. 소주의 송금(宋錦), 광서의 장금(壯錦), 성도의 촉금(蜀錦)과 함께 남경의 운금(雲錦)이 4대 비단 중에서 최고라고 알려져 있다. 곱고 아름다운 자태가 하늘의 꽃구름과 같다고 하여 운금이라 불려진다. 근 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1촌 비단이 1촌의 금처럼 귀하다(寸錦寸金)”고 할 정도로 귀한 비단이다. 다음 일정으로 아쉽게도 입구에서 돌아서야했다.


우리 제2조는 남경시 위화중학교를 찾았다. 제1조는 남경시 제1중학교를 방문한다. 중국은 고등학교가 별도로 없이 중고교 과정이다. 이 학교 교장 선생님의 주관으로 학교와 교과과정 등 전반적 소개를 듣고 토론 시간도 가졌다. 중국은 한 학교에 교장선생이 2명으로 이원화돼 있다. 당(정부)에서 나온 교장이 학교의 전반적인 운영을 맡고 교육을 전담하는 교장선생이 별도로 있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한 교장은 교육전담이란다. 교내 시설을 둘러보고 일행이 기념촬영을 했다.


저녁은 남경시 여유국 초청 만찬으로 진행됐다. 범거령 중국여유국 서울지국장의 인사말과  남경시 여유국장의 환영사에 이어 한국고등학교장 대표의 답사로 진행됐다. 이어서 남경시 교육청 관계자가 각 테이블에 합석해 간담회를 가졌지만 원활한 소통이 되지 못해 아쉬웠다. 남경의 명주와 베스트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졌지만 기름진 음식들이 많아 일행들은 중국인에 비해 소식을 한다. 저녁 만찬 후 우리는 진회하를 답사했다. 진화회를 가는 길목에 많은 시민이 나와 단체로 체조를 하는 모습이 새로웠다.



남경의 젖줄 진화회 유람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로 불리는 이곳은 과거 중국 여섯 왕조의 도읍이었던 남경의 젖줄이다. 옛 지명은 회수였고 용장포라고도 불렸다. 원류는 동쪽의 구용현 보화산이며, 남쪽의 을수현 동려산이다. 두 물줄기가 강녕현 방산태에서 만나 남경성 동쪽 수문으로 흘러들어와 성을 관통하며 서쪽 수문으로 빠져나가 장강으로 흘러간다. 전체 길이는 110km로 성 밖을 외진회, 성 내를 내진회라고 하며 성 내는 5km이다. 고사에 따르면 진시황제가 이곳에 방산(方山)을 파고 장릉을 잘라 금릉(현 남경)의 왕기를 없앴다고 해서 진회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연안에 부자묘, 첨원 등 유적들이 산재해 남경의 주요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다. 진회하는 수려한 경관과 휘황찬란한 야경이 절경이다. 진회하 기슭에 위치한 부자묘는 공자를 모신 사당으로 영성문과 대성문, 대성전, 명덕당, 존경각 등이 들어서 있다. 또한, 강남공원(江南貢院)에서는 58명의 장원급제자가 나와 명성을 얻었으며, 이곳 맞은편에 위치하며 풍악을 가르치는 곳에서 8명의 명기가 나와 진회8염(秦淮八艶)이라 불리었다. 절색의 아름다움과 재주, 절개로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진회하가 품은 역사와 문화스토리는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이곳에 위치한 첨원은 원래 왕부였지만 오늘날에는 태평천국의 역사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백로주공원도 원래 왕부의 정원이었다고 한다. 15개의 작은 정원으로 이뤄진 이곳은 정자, 누각, 교각, 복도, 건물 등이 조화를 이뤄 정원문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진회하 나룻터의 하나인 도엽도는 아름다운 러버스토리가 스며있다. 도엽도라는 사람이 사랑하는 여인을 이곳에서 맞이하고 그녀를 위해 시를 쓰며, 나루터를 도엽도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이곳에는 연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진회하의 운치는 야경이다. 화려한 불빛조명이 명멸하며 감상에 젖게 한다. 강변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춤과 노래로 관광객을 환영한다. 전통 복장을 한 고관대작과 선비들이 노니는 모습도 보인다. 앞서가는 유람선의 불빛이 강물과 조화를 이루고 강변의 화려한 조명이 절경을 만든다. 황홀한 경치에 탄성을 지르다 보니 어느새 50여 분의 시간이 흘러 가버렸다. 여유롭게 감흥을 즐기려면 넉넉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늦은 시간에 남경진링쟝빈호텔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이틀 밤을 보낸다. 내일은 6시 모닝콜을 한다고 가이드가 알려왔다.



소주 고전원림 졸정원을 가다

고속철도 편으로 소주를 향했다. 예전 같으면 관광버스로 장시간을 가야했다. 중국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이 강남이며 강남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시가 소주(蘇州)다. 태호의 기슭에 위치한 소주는 중국의 이름난 역사 문화도시이자 자연관광도시다. 중국에서 경제가 제일 발달한 장강 삼가지 지구의 중심도시이며 동쪽으로 상해와 이웃해 있고 남쪽으로 절강성과 접해 있다. 전체 면적 8,488㎢ 중 55%가 평야이고 42.5%가 호수이며, 인구는 585만 명이다. 춘추전국시대는 오나라의 수도였다.  소주는 천혜의 경관과 역사문화를 간직한 곳으로 예로부터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지상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고 전해진다. 정원도시인 소주는 현재 70여 곳의 고전 원림이 보전돼 있다. ‘강남의 원림이 천하의 으뜸이라면 소주의 원림은 강남의 으뜸’이라고 할 정도다. 소주의 원림은 유네스코에 세계문호유산으로 올라있다.


소주의 첫 답사는 졸정원(拙政園)이다. 졸정원은 명나라의 어사 왕헌신이 낙향해 당대(唐代)의 옥귀몽 택지와 원대(元代)의 대홍사의 옛터에 건립한 정원이다. 진나라의 대문장 반악이 지은‘한거부(閑居賦)’ 의 내용 중 “집을 짓고 나무를 심어 유유자적하고... 터밭에 물을 주고 채소를 가꾸어 조석 음식 걱정이 없으니 ... 이야말로 어리석은 자(拙者)의 정치(爲政)이로다”에서 착안해 ‘은퇴’를 의미하며 졸정원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한다. 부지 5만 2,000㎡의 규모로 중국에서 제일 큰 사설 정원으로 199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중국 정원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상상도 하지 못할 규모와 설계를 갖추고 있다. 오밀조밀한 조형물에서부터 웅장하고 거대한 형태, 생태환경에 가까운 자연의 조화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 이곳은 유료입장이다. 성수기(3~5월, 9~11월)는 30위안이며 비수기에는 20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광활한 지형을 축약해 정원에다 자연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직접 방문할 수 없는 먼 지역의 산수를 정원으로 조성해 향유하려는 욕구가 이런 걸작을 조성한 것이다. 가이드의 스토리텔링은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탄성을 지르게 하는데 일조한다. 카메라에 담기가 급급해 가이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해 아쉬웠다. 다양한 의미를 부여해 조성한 구조물들이지만 그냥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주마간산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호수에서 유일하게 자태를 드러낸 붉은 연꽃 한 송이가 잠시 숨을 돌리게 한다.



우원(?園)을 가다

어느덧 점심때가 됐다. 원림도시라서 그런지 정원 식당인데 음식이 뷔페식이다.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오찬을 즐기고 우원으로 향했다. 평강역사거리에 위치한 유원은 삼면이 강으로 조성돼 있다. 7,992㎡의 면적에 건물은 동서 2쌍으로 나란히 구성돼 ?園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 정원 주인(沈秉成)은 청나라 광서 초기에 이곳을 조성하고 부인과 함께 도심 깊은 곳에 은거했다. 부부가 함께한다는 의미가 더해져 우원이라는 스토리가 관심을 갖게 한다. 소규모의 정원이지만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우원 방문을 마치고 평강역사거리로 향했다. 이번 기행은 노젖는 배를 타고 역사문화를 답사하는 여정이다. 강변에는 옛 모습을 간직한 집들이 늘어서 있다. 0.4㎢밖에 안 되는 지역에 강, 교량, 수로가 집중돼 있고 명ㆍ청 시대의 고택과 사원, 도관 등이 고풍스런 모습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중국 정부에서는 평강 역사거리의 고택 보존과 당시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고 한다.

나루터에서 우리 일행 6~8명씩 승선한 목선을 뱃사공이 노를 저어 항해한다. 좁은 수로를 뱃사공의 노랫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시대를 거슬러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수변에서 노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반기는 모습에 한가로움을 만끽한다. 수변 난간에 걸터앉아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나무 그늘에 앉아 독서 삼매경인 청소년 등을 스쳐가면서 명ㆍ청대의 태평세월로 들어가는 느낌이다. 잿빛 물결에다 회색 건물과 담벼락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은 찾아볼 수가 없으며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객도 붐비지 않는다. 다만 당시의 역사문화를 음미해 본다. 중국 곤곡박물관으로 향했다.



중국 전통 곤곡 공연 감상

평강역사구역 전진(全晋)회관 내 위치한 소주희곡박물관은 청나라 광서년 시기에 소주에 주재한 산서 상인들이 건립한 것으로 당시 건물이 완전하게 보존돼 있다. 전후 무대와 양쪽의 관람루로 구성된 극루는 소주의 현존 무대 중에서 제일 정교하게 건립됐다. 관내에는 쿤취(昆曲)ㆍ핑탄(評彈)ㆍ쑤쥐(蘇劇)ㆍ고전 민속악기 등 4개의 전시실로 구성돼있으며 소주의 쿤취와 평탄 등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 일행은 곤곡(쿤취)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공연도 감상할 수 있었다. 곤곡은 70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중국 전통 희곡 중 가장 오래된 극이다. 시사, 음악, 노래, 춤 등이 어우러져 펼쳐지는 곤곡은 중국의 문학사와 희곡사, 음악사, 무용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곤곡의 작품으로는 모란정ㆍ남가기ㆍ한단기ㆍ자차기ㆍ장생전ㆍ도화선 등이 유명하다.  

박물관 안내원의 곤곡 유래에 얽힌 스토리를 전해 듣고 무대 등을 둘러봤다. 당시의 건축물들이 생생하게 잘 보존돼 있었다. 야외에 설치된 무대는 관람객이 잘 볼 수 있도록 양쪽에 관람루가 조성돼 있는 구조다. 곤곡공연은 실내 무대에서 감상했다. 남녀 사랑이야기를 전하는 내용인데 통역이 안 돼 중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은 무언극을 보는 기분이다. 해외 관광은 그 나라 언어부터 익혀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데 구경하는 수준의 체험은 자기중심적인 문화체험이 될 뿐이다. 통역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미흡한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곤곡박물관 탐방을 마치고 예정에 없던 실크공장으로 왔다. 소주의 특산물은 비단(Silk)이다. 이곳은 단체관광객들이 찾는 필수코스라고 할 정도란다. 누에 성장과정에서부터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는 현장, 비단을 짜는 모습 등을 견학하고 판매장을 들렀다. 일행들은 선물용으로 실크제품을 구입했다.

서둘러 소주메리어트호텔에 여장을 풀고 환영 만찬장으로 가야했다. 이곳 소주시 여유국에서 관광설명회 및 교류회를 준비한 것이다. 범거령 중국여유국 서울지국장을 비롯해 소주시 여유국장 및 관계자가 참석해 환영사와 함께 관광설명회를 진행했다. 만찬에는 김치, 오이무침, 콩나물 등 한식 요리가 함께 나와 반가웠다. 식사 후 오늘이 이번 관광답사의 마지막 밤이라는 생각에 시내 야경을 둘러보기로 하고 이번 중국여행 중 가장 절친했던 금산중ㆍ고 조영석 교장선생(사진)과 동행을 하기로 약속됐다. 또 사진 촬영을 함께한 2분이 함께했다. 택시를 타고 무작정 중심가에서 시민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주말(금)이지만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라 거리는 한산했다. 몇 명에게 호프집을 물었지만 찾지 못하고 거리를 헤매다 다행히 포장마차 거리를 발견하고 노상에서 꼬지와 맥주를 마실 수 있었다. 그나마 소주시의 정서를 체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9월 14일 오늘은 이곳 소주 중학교를 탐방하고 오찬 후 귀국한다. 이곳 소주중학교는 북송(1035) 때 저명한 정치개혁자 겸 군사전문가, 문학가였던 범중엄(范仲淹)에 의해 설립된 중국의 명문학교다. 대학 캠퍼스에 버금가는 규모의 이 학교는 1천여 년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ㆍ계승하고 있다. 담당교사의 학교 시설 소개와 교장선생님의 교육방침 설명을 들으면서 거대 중국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한국교장선생님들께 의미 있는 방문이 됐을 것이다. 

소주 ‘산수루’에서 뷔페식 오찬을 하고 관광버스를 타고 상해 푸동 공항으로 출발(12시 30분)했다. 오후 6시 05분 동방항공을 탑승해 20:45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5일간의 여행이었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래 간직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