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던 박아람(31)씨는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 했다. 여행 전 온라인 면세점에서 구매한 물건을 면세품 인도장에서 인도 받는 시간이 너무 오랫동안 지체됐기 때문이다. 박씨는 “대기자만 150명 넘는다는 번호표를 받아 들었을 때는 아찔했다”며 “바로 앞 중국인이 수십 개의 물건을 받느라 30분 가까이 걸렸을 때는 비행기를 이대로 놓칠 것만 같아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공항 면세품 인도장이 여행자들의 발을 붙잡고 있다. 물건을 면세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해외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앗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관세법에 의하면 시내 면세점이나 인터넷 면세점 등에서 구매한 물품은 공항 면세품 인도장에서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에 찾아야 한다. 하지만 관세청이 시내 면세점 허가를 늘리고, 인터넷 면세점이 활성화되면서 지난해 면세품 인도 건수는 3,208만 건으로 2014년(873만 건)에 비해 4배가량 증가한 수치를 보였다. 문제는 인도장 면적은 같은 기간에 약 2.5배 증가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다. 인도장 인프라가 증가하고 있는 이용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면세품 인도장은 주로 내국인이 이용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공항과 시내면세점 매장에서 직접 상품을 수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관련 업계에 의하면 최근 내국인들의 해외여행 확대로 공항을 찾는 내국인들의 숫자도 크게 증가했다. 통계적으로 내국인과 외국인 출국객을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작년 중국 정부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이후에도 출국객 수가 증가한 것을 보면 한국인들의 해외여행이 그만큼 늘어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금융 전문가의 보고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면세점 업계의 매출액은 1조 9천억 원으로 전년대비 13.8% 증가세를 나타냈으며, 내국인 면세점 이용객 숫자도 16.1% 증가했다.
면세점을 이용하는 사람은 늘어났는데 물건을 받는 곳은 한정돼 있다 보니, 인도장은 항상 인산인해다. 대형 면세점 두 곳은 인도장 혼잡 때문에 물건을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출국 3시간 전에 인도장에 도착해달라는 안내를 공지하기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 시간에 지쳐 면세품을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2월 4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여객기 출발이 잇따라 지연된 것도 면세품 인도가 늦어졌기 때문이다. 인천공항공사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면세품 인도장에 중국인 보따리상과 여행객이 몰려 대량의 미인도 사태가 발생했다. A항공사에 따르면 4일 오전 8시 20분 베이징으로 출발 예정이었던 여객기에 일부 승객이 탑승하지 않았고, 탑승하지 않은 승객의 짐을 여객기에서 내리는 작업을 하면서 승객 115명을 실은 여객기는 2시간 뒤인 10시 10분이 돼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면세점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인천국제공항에서만 약 50만 건에 달하는 면세품 미인도가 발생했으며, 이는 9월 기준 6,500만 달러(약 715억 원)에 달한다. 미인도 면세품은 고객의 늦은 출국 수속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인프라 부족에 따른 대기 인원이 문제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 일부 고객들은 너무 오랜 대기 시간에 화를 참지 못해 고성이 오가기까지 한다.
공항 측이 인도장을 확충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공항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이미 확정돼 있고, 추가로 확장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공항 측이 임대료 극대화를 위해 수익성이 없는 인도장 공간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공항면세점의 경우 정액제로 연도별로 임대료를 측정한다. 하지만 인도장의 경우 면세품 인도 금액에 따라서 임대료가 결정된다. 대기업의 경우 0.6%, 중소면세점은 0.3%의 요율로 인도금액에 따라 임대료를 납부한다. 공항면세점의 1년 임대료가 최대 수천억 원인 곳도 있는 것에 비해서는 적은 금액이다. 결국 공간이 부족해서 불편을 떠안는 건 고객뿐이다.
면세점 협회에서도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지난 2월 면세점 협회 김도열 이사장은 ‘면세산업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인도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대기자 줄이 길어져 면세품 인도가 늦어진다”고 지적했다.
인도장 대란을 해소하기 위한 대안으로는 ‘입국장 인도장 설치’와 ‘중소·중견 시내면세점 현장인도 활성화’를 제안했다. 입국할 때 면세품을 인도받는 입국장 인도장은 세계적으로 늘어가고 잇는 추세다. 중국 베이징·상하이, 홍콩, 호주 시드니·멜버른·브리즈번, 뉴질랜드 오클랜드, 아일랜드 더블린 등에 입국심사를 받기 전 장소에 입국장 인도장이 설치돼 있다.
입국장 인도장은 내국인 여행자들에게도 좋은 소식이다. 해외여행을 할 때 면세품을 직접 들고 다니지 않아도 돼 편의가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인도장을 분산해 항공기 지연까지 예방할 수 있지만 통관문제 및 공항공사 등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돼 왔다.
중소중견 시내면세점에서 현장 인도 비율을 늘이는 것도 출국장 인도장 혼잡을 줄일 수는 있으나, 이는 외국인들이 현장에서 인도 받은 후 비행기표를 취소하는 방식으로 악용할 가능성이 높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면세품 인도장이 나날이 혼잡해지자 인천공항 측도 확장의 의지를 내보였다. 현재 동·서 3개소로 분산돼 있는 T1 인도장을 4층 공간에 1개소로 통합·확장하고 탑승동 인도장도 동·서 4개소에서 4층 라운지 지역 1개소로 통합·확장할 계획이다.
즐겁게 시작돼야 할 여행이 혼잡한 절차로 인해 시작부터 어둡게 물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구매를 한 물건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구매자에게도 판매자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 면세품에서 시작된 관광경제가 원활히 활성화 돼야 할 것이다.
오진선 기자 sumaurora@newso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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