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에 한 연구원이 일본 가나자와에서 근무하는 친구와 베니스비엔날레 갔을 때의 일이란다. 베니스비엔날레 티켓 부스에 있는 아가씨가 일본의 유명한 문화도시인 가나자와는 모르고 광주는 알더란다. 해외에서 알아주는 '광주'라, 이것이 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도시의 힘이자 가치인가 싶었다고 했다. 한편 지난 2015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인 최초로 은사자상을 받아 한국미술의 위상을 높인 임흥순 감독은 시상식에서 “광주비엔날레에 3회 참여했는데 그런 경험들이 작가로서 성장하는데 큰 힘이 됐다'라며 “광주비엔날레가 저를 키웠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20년 역사 동안 광주비엔날레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 작가가 되어 세계무대에 진출하며 그 영향을 언급한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을 '광주비엔날레 키즈'로 명명했다.
광주비엔날레, 20년의 성과
최초의 비엔날레로서 100년 이상의 전통과 위상을 자랑하는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 국가와 지역의 문예 진흥 차원에서 출발했다. 비엔날레계의 선도자라 할 수 있는 베니스비엔날레의 사례에서도 보듯이, 비교적 최근의 현대적인 미술 제도로서 비엔날레의 개념 배경에는 '전 지구화 시대의 문화적 정체성 확립'과 '문화산업으로서 전략적 국제 예술 이벤트' 로서의 도시 홍보 및 마케팅 전략이 놓여있다.
대부분 개최 도시의 이름을 내건 '비엔날레'는 국제적 규모로 '현장성'과 '국제성'을 중심으로 동시대의 첨예한 문화 담론을 생산·유통·교육하는 일시적 현대미술의 경합 장이자, 국제문화교류와 소통의 장소로서 역할을 담당해왔다. '비엔날레'의 어원대로 2년에 한번 개최하는 것을 기본으로, 적게는 몇 억에서 부터 많게는 백 억 원 이상의 거대한 예산이 투여되는 메가 이벤트이다. 이런 까닭에 비엔날레는 '국제현대미술전'이면서도 도시와 국가를 대표하는 이벤트로서 문화, 예술, 관광 산업이 연계된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한다는 점에서 비엔날레는 '소통의 미학' 이 더욱 필요하다.
광주비엔날레는 1995년 정부의 '세계화·지방화' 정책 및 '미술의 해' 지정과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문화적 치유와 승화'의 장으로서 광주 도시가 거듭나기를 염원하며 범정부 차원의 국제 미술행사로 출범하였다. 그 후 20년이 지난 2014년 세계적 권위의 인터넷 미술 매체 '아트넷 Artnet'이 발표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비엔날레에서 5위에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비엔날레 역사, 관람객 수, 예산, 큐레이터 영향력 등에 관한 전문가들 대상의 설문조사에 의한 평가 지표를 분석한 결과였다. 또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2015년 8월에 발표한 보도에 의하면, 국내 미술 전문가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20세기 한국미술에서 영향력 있는 전시 1위로 광주비엔날레 1회, 2회 전시를 선정하였다. 1995년 창설된 이래, 약 20여 년이라는 짧은 역사 속에 이루어낸 성과들이다.
광주비엔날레의 도시 문화적 파급효과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20여 년간 주 전시와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면서 비엔날레 전시공간으로서의 '중외예술공원'의 인지도를 높였다. 동시에 2004년 이후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토대이자, 견인처로서 광주비엔날레의 국제적 위상은 정부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실질적 토대가 되었다.
또한 광주 도시의 역사 문화적 장소들 5·18자유공원, 무각사, 광주극장, 의재미술관을 비롯한 사립미술관, 양림동, 재래시장을 전시장소로 선정, 행사장으로서 연결함으로써 '비엔날레'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공간'들이 문화적으로 재조명 받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2002광주비엔날레 프로젝트4 <접속>전은 당시 폐선 부지를 푸른 길 공원으로 가꾸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과 긴밀히 소통하며 시민사회와 건축가와 작가들이 결합하여 제시한 문화적 제안으로 광주 푸른 길 조성에 기여한 경우이다. 2008광주비엔날레 <복덕방 프로젝트>는 구도심의 퇴락한 재래시장 '대인시장'이라는 생생한 삶의 현장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시장과 예술 사이의 소통을 모색하였으며 예술가들의 시장 내 점포 입주를 통해 예술의 생산과 향유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 복덕방 프로젝트의 성공에 힘입어 2009년부터 현재까지 공적 지원이 계속되고 있으며 광주의 대표적인 문화 예술 관광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광주비엔날레는 비엔날레 미술영상대학, 전시해설사(도슨트) 양성 교육프로그램, 인턴십 프로그램, 나도비엔날레작가 사업, 광주작가 국제화를 위한 포트폴리오 공모전 등을 통해 시민 문화육성 및 지역 문화활동가, 문화예술인력 양성 등에 기여해왔다.
광주비엔날레 목적사업 외에도 광주광역시의 위탁사업으로 광주디자인비엔날레 1~5회, 광주폴리 1~3차 사업, 광주아트페어 1차 등을 재단의 축적된 네트워크와 사업수행역량으로 성공적으로 추진하여 문화적 도시 환경 조성 및 도시 발전에 기여해왔다.
국제적으로는 1895년 비엔날레 역사출범 이래 120여년 만에 최초로 [세계비엔날레대회]를 광주에서 개최(2012.10)하여 비엔날레 역할과 비전을 재정립시켰으며, 이를 계기로 세계비엔날레 협회 창립을 견인하고 사무국을 광주로 유치하여 국제 문화도시 광주의 위상을 높였다. 또한 2008광주비엔날레 오쿠이 엔웨저, 2010년 마시밀리아노 지오니 예술총감독이 연속으로 2011,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예술감독이 됨으로써 사실상 광주비엔날레에서의 전시기획 성과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2009년부터 운영 중인 [광주비엔날레 국제큐레이터코스]를 통해 매기별 신진기획자 20∼25명씩 총 7기 154명을 배출, 2016년에는 6:1의 경쟁을 뚫고 16개국 21명 참가, 국제적인 전시기획자 육성 및 성장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향후 이러한 국제적인 전문가 네트워크의 플랫폼을 구축하여 지속적인 광주비엔날레 팰로우를 유지, 확대해가는 것은 또 하나의 남겨진 과제이다.
광주비엔날레의 경제적 파급효과
광주비엔날레는 매회 외부 연구소를 통해 관람객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지난 2012년 이래 광주비엔날레의 종합만족도는 매회 상승 중이며, 2회 이상 관람이 62.6%로 고정 관객층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또한 2014년 관람객의 차기 행사 관람 의향은 71.5%로 나타나 광주비엔날레 매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광주라는 도시의 문화관광 유인 요소 및 관련 인프라가 부족한 점을 감안할 때, 이 수치는 더욱 의미있다.
그렇다면 '광주비엔날레'가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어떠할까. 광주전남발전연구원은 2016광주비엔날레 경제성 분석을 실시한 결과, 전국 단위와 광주 지역에 생산유발효과, 부가가치 유발효과, 고용유발효과 등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실험적 순수예술 행사인 광주비엔날레의 기본 재원은 정부보조금이기 때문에, 매회 관계 부처인 기획재정부, 지역발전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행정안전부의 심사 및 평가를 받고 있다. 평가지표는 주로 수치화, 개량화 가능한 성과로서, 관람객 수(유, 무료), 외국인 관람객 비중, 관람객 만족도, 경제성 분석, 수익성 분석 등이 주요 사항이다. 국가의 지원이 있었기에 광주비엔날레는 20년 넘는 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세계 5대 비엔날레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동시에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한국 문화예술의 국격과 국가 이미지 제고에 보이지 않지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것은 도시 광주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도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미래에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국가의 핵심 역량이다. 혹자는 창의성은 '낯선 것에 대한 즐거움'이자, '모호함에 대한 너그러움'이라고 말했다. 경제적 가치와 개량화로 측정되지 않은 더욱 중요한 문화적 가치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광주비엔날레는 '창의적 혁신과 공존의 글로벌 시각문화 매개처'를 비전으로 50년, 100년의 지속가능한 더불어 탁월한 역사를 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지금 광주는 '비엔날레 중'이다.
글 출처: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관광웹진
천윤희 차장(광주비엔날레 정책기획팀)은 국어국문학(교직이수), 예술경영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재단에 입사한 이래 광주 비엔날레와 디자인비엔날레를 오가며 전시부, 홍보마케팅부 업무를 거쳐 현재는 정책기획실 차장으로 재단발전방안연구, 대내외 평가, 국내 유관기관 네트워크 등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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